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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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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대제/사직대제

분향

공부자탄강기념일

석전의 의의

석전이라 함은 문묘에서 공부자(孔夫子)에게 제사지내는 의식을 일컫는다. 즉 만세종사(萬世宗師)이신 공부자께서 남기신 인의도덕의 이상을 근본삼아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하여야 할 효제충신(孝悌忠信)의 실천과 수제치평(修齊治平)의 도리를 천명함에 있어 배사모성(拜師慕聖)의 예로서 생폐예제(牲幣醴齊)를 헌설(獻設)하고 공부자께서 자리에 앉아 계신 듯이 엄숙하고 경건하게 전례(奠禮)를 봉행하는 것을 석전이라고 한다.

그러나 원래는 문묘에서 선성(先聖), 선사(先師)에게 제사지내는 의식으로서 석(釋)과 전(奠)은 다 차려놓다는 뜻으로, 석채(釋菜)라 하면 빈번지류(蘋蘩之類)로 단조로운 차림이고, 석전은 생폐(牲幣)와 합악(合樂)과 헌수(獻酬)가 있는 성대한 제전(祭典)이다. 이러한 석전은 선성과 선현들의 학문과 인격과 덕행과 사상을 단순한 이론으로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이를 숭모하고 존중히 여기며 스승을 높이하고 진리를 소중히 여기는 기풍을 체득하기 위하여 문묘에서 거행하는 의식이다.

본래 문묘는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년)에 설립한 태학(太學), 신라시대의 국학(國學), 고려시대의 국자감(國子監), 조선시대의 성균관(成均館) 등의 국립대학 구내에 건립하여 국조(國朝)에서 주관하는 오례(五禮) 중에서 길례(吉禮)편에 속하는 국가적 중사인 석전을 지내는 장소로 사용되어 왔다. 이러한 태학이나 국학, 국자감, 성균관은 우리 나라의 유일한 전통적 민족대학으로서 유교를 근본이념으로 하여 인재를 양성해 온 교육기관이다.

석전의 유래(由來)

석전이란 학교에서 선성(先聖), 선사(先師)에게 제사지내는 의식이라 하였는데 여기서 선사(先師)란 앞서간 전대(前代)의 훌륭했던 스승들을 일컫는 말이고, 선성(先聖)이란 주대(周代)에는 요(堯)·순(舜)·우(禹)·탕(湯)·문왕(文王)·무왕(武王)·주공(周公)을 일컫는 것이 고대 중국의 관례이고, 한(漢) 이후 유교를 국교로 받들게 되자 공부자를 점차 선성, 선사의 자리로 올려 문묘의 주향(主享)으로 모시는 동시에 석전으로 우러르는 관례가 정착이 되었다. 후한(後漢) 명제(明帝) 같은 제왕은 주공(周公)을 선성, 공부자를 선사로 삼아 공부자의 고택(古宅)을 찾아가서 석전을 올리기도 하였다. 위(魏), 수(隋), 당(唐) 이후로는 대체로 공부자를 선성, 안회(顔回)를 선사로 받들어 석전을 올렸다.

특히, 당 태종 정관(貞觀) 4년(630년)에는 각 주(州)의 현(縣)마다 공부자묘(孔夫子廟)를 세웠는데 당 현종(玄宗)이 개원 27년(736년)에 공부자를 문선왕(文宣王)으로 추봉하였다. 공부자께서 돌아가신 후 그의 옛집 곡부(曲阜)에 묘(廟)를 세우고 후제(後齊)에 이르러 태학의 가운데에 공안(孔顔)의 묘(廟)를 두었다. 명(明)에 와서 태학의 문묘를 대성전이라 일컬어 석전을 올리는 사당으로 확립되었다.

우리 나라에 유교가 전래한 기록은 없지만 최초로 태학을 설립한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 2년인 서기 372년으로 이때 석전도 함께 봉행했을 것으로 추측이 된다. 백제는 국립 중앙학교 설립의 기록은 전하지 않으나 오경박사(五經博士) 등의 명칭이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나오고, 일본에 『논어』와 『천자문』을 전한 박사 아직기(阿直岐), 왕인(王仁)의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국립 중앙학교도 석전의식을 봉행했던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신라에서는 진덕여왕(眞德女王) 2년인 서기 648년에 김춘추가 당나라에 건너가 그곳의 국학(國學)을 찾아 석전의 의식을 참관하고 돌아온 후 국학설립을 추진했고 신문왕(神文王) 2년에 그 제도가 확립되었다. 성덕왕(聖德王) 16년(717년)에는 태감(太監) 김수충(金守忠)이 당으로부터 공부자와 10철 및 72제자의 영정을 가져와서 국학에 안치했다는 기록이 있어 석전의식이 국학에서 봉행되고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고려에서는 『고려사(高麗史)』에 보면 국자감에서 석전례를 행한 것을 볼 수 있으며 성종(成宗) 2년(983년) 박사 임성로(任成老)가 송으로부터 공부자묘도(孔夫子廟圖) 한 폭과 제기도(祭器圖) 1권, 72현찬기(賢贊記) 1권을 각각 가져와 성종에게 올렸으며 현종(顯宗) 11년(1020년) 8월, 최치원을 선성묘에 배향하고 같은 13년(1022년)에는 설총을 또한 이 묘에 배향하였다. 예종(睿宗) 9년(1114년) 6월에 사신 안직승이 귀국할 때 송휘종(宋徽宗)이 신악기와 악보 및 지결도(指訣圖)를 보내 주었다. 이 때 보내준 악기는 속악기와 아악기가 혼합하여 있었다. 이 악기를 받을 하례사(賀禮使)로 추밀원(樞密院) 지주(知奏) 왕자지(王字之)와 호부(戶部) 미중(微中) 문공미(文公美)를 파견하였다.

예종 11년(1116년) 6월에 송에 하례사로 가 있던 왕자지, 문공미에게 휘종이 조서(詔書)와 함께 대성아악(大成雅樂)을 보내 주었다. 이 때에 들어온 대성아악은 순수한 아악기에 속하며 이와 함께 아악 연주에 필요한 무구(舞具), 무복(舞服) 장식 일습을 구비하여 보내온 것이다. 이 때 들어온 대성아악은 원구(圓丘)·사직(社稷)·태묘(太廟)·선농(先農)·선잠(先蠶)·문선왕묘 등의 제사와 그밖의 연향에 쓰이게 되었다. 충렬왕 30년(1304년) 6월에 고려의 국도 개경에 있던 국자감을 성균관으로 개칭하였는데 성균관이라고 하는 이름은 "一掌成均之法典 以治建國之學政"이라는 『주례(周禮)』의 성균에서 연원된 것이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태조(太祖) 7년(1398년), 숭교방(崇敎坊)에 성균관을 설치해 국립 최고학부의 기능을 다하게 했으며, 정전(正殿)인 대성전에는 공부자를 비롯해서 4성, 10철과 송조6현 등 21위를 봉안했고, 동·서무에 우리 나라 명현 18위와 중국 유현 94위 등을 봉안하여 매년 춘추 두 차례 석전을 받들어 행하였다.

그러나 일제치하인 1937년부터는 양력 4월과 10월의 15일로 변경하여 실시하다가 해방 후인 1949년에 전국 유림대회의 결의로 5성위(五聖位)와 송조2현(宋朝二賢)만 봉안하고 그 외 중국 유현을 매안(埋安)하고 우리 나라 18현을 대성전에 승봉종향(陞奉從享)하고 춘추석전을 폐하고 탄일(誕日)인 음력 8월 27일에 기념석전을 봉행하다가 2007년부터 공부자(孔夫子)의 기신일(忌辰日)을 양력(陽歷)으로 환산한 5월 11일에 춘기석전(春期釋奠)을 봉행하고, 탄강일(誕降日)을 양력으로 환산한 9월 28일에 추기석전(秋期釋奠)을 봉행하였다. 그러나 2014년부터 석전대제에 관하여 문화재청의 “198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 지정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하라”는 공문에 따라 성균관은 2014년 추기 석전대제부터 일무와 아악을 198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 지정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하며, 예법에 따라 2᛫8 상정(上丁) 석전으로 모시기로 결정하고 2014년 추기석전부터 시행하였다.

그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 석전대제의 일자를 변경하였다. 고래로 석전은 중춘(仲春), 중추(仲秋) 상정(上丁) 일에 변함없이 꾸준히 모셔져 왔으나, 근래에 성균관의 몇몇 임원들의 잘못된 인식으로 인하여 2007년부터 석전(釋奠)을 공자님 돌아가신 날(양력 5.11)과 탄강일(양력 9.28)로 진행되었다. 석전은 춘(春)에 관(官)이 석전우기선사(釋奠于其先師)한다고 <예기(禮記)>에 기록되어 있고, 조선왕조실록에도 세종대왕 시대에 국법으로 춘추이중상정(春秋二仲上丁)으로 시일을 확정하였으며, <태학지(太學志)>에도 석전은 중춘추상순정일(仲春秋上旬丁日)이라고 분명히 밝혀져 있는 오래된 태학(太學) 전통의 헌장이었다. 이에 2᛫8 상정(上丁) 석전으로 모시게 되었다.

둘째, 석전대제의 음악(아악) 연행의 변경하였다. 문묘석전의 아악은 만세종사이신 공부자를 존숭하고 숭모하는 지극히 고아(高雅)한 음악이며, 나아가 인간 본연의 마음을 담은 음악을 갖추기란 고도의 숙련된 음악적 학습이 없이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것이기에, 2014년 추기석전부터 198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 지정 당시 연주한 국립국악원 악사들을 모시고 연행하기로 하였다.

셋째, 석전대제의 춤(일무) 연행을 변경하였다. 문묘석전의 춤은 공부자의 문덕(文德)과 무덕(武德)을 몸동작으로 형용한 것인데, 그 춤사위가 1986년 석전대제의 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 지정 당시의 것에 비해 큰 변화가 있어, 이것 역시 문화재청이 요청한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당시의 것으로 환원하여 모시기로 결정하였다.

오늘날의 석전(釋奠)

우리나라의 석전대제에는 중국이나 일본에도 남아 있지 않는 고래(古來)의 악기와 제기를 보유하여 사용하고 있으며, 고전음악인 문묘제례악(文廟祭禮樂)과 고무(古舞)인 팔일무(八佾舞), 제관(祭官)이 입는 전통적이고 권위있는 의상과 고전적 의식절차 등이 화려하고 장중하여 예술적 가치가 클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유일하게 그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커서 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러한 석전은 동양의 철학과 학문과 그 인습에 깊이 뿌리를 둔 종합적이고 복합적인 문화의 양식으로 오늘날까지 동양문화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본질적인 맥락이다.

석전순(釋奠順)

1) 전악(典樂)이 악사(樂士)와 무생(舞生)을 인솔(引率)하여 소정(所定)의 위치(位置)에 들어감.
2) 찬인(贊引)이 대축(大祝)과 제 집사(執事)를 인도(引導)하여 소정(所定)의 위치(位置)에 들어감.
대축(大祝)과 제 집사(執事)가 사배(四拜)함. 대축(大祝)과 제 집사(執事)가 관세위(관洗位)에 나아가 세수(洗手)하고 대성전(大成殿) 계상(階上)에 정열(整列)함.
3) 알자(謁者)와 찬인(贊引)이 초헌관(初獻官), 아헌관(亞獻官), 종헌관(終獻官), 분헌관(分獻官)을 인도하여 소정의 위치에 들어감.
알자(謁者)가 초헌관(初獻官)에게 행사(行事)를 청함. 당하악(堂下樂)과 문무(文舞)를 시작함. 헌관(獻官)과 참례자(參禮者) 일동(一同)이 사배(四拜)함.
4) 전폐례(奠幣禮) : 알자가 초헌관을 인도하여 관세위에 나아가 세수하고 공부자대성위 앞에 나아감. 당상악과 문무를 시작함. 초헌관이 공부자대성위 앞에 꿇어 앉아 세 번 분향하고 폐백(幣帛)을 드리고, 차례로 안자성위(顔子聖位)와 증자성위(曾子聖位), 자사성위(子思聖位), 맹자성위(孟子聖位)에 나아가 분향하고 폐백을 드리고 소정의 위치로 돌아감.
5) 초헌례(初獻禮) :알자가 초헌관을 인도하여 공부자대성위에 올릴 술상 앞에 나아감. 당상악과 문무를 시작함. 공부자대성위 앞에 나아가 술잔을 올리고 조금 물러서서 꿇어 앉음. 대축이 축문(祝文)을 읽음. 초헌관이 안자성위, 증자성위, 자사성위, 맹자성위 순으로 나아가 각각 술잔을 올리고 소정의 위치로 돌아감.
6) 아헌례(亞獻禮) :알자가 아헌관을 인도하여 관세위에 나아가 세수하고 공부자대성위 앞에 나아감. 당하악(堂下楽)과 무무(武舞)를 시작함. 공부자대성위 앞에 술잔을 올리고 다음 사성위(四聖位) 순으로 각각 술잔을 올리고 소정의 위치로 돌아감.
7) 종헌례(終獻禮) :알자가 종헌관을 인도하여 관세위에 나아가 세수하고 공부자대성위 앞에 나아감. 당하악(堂下楽)과 무무를 시작함. 공부자대성위 앞에 나아가 술잔을 올리고 다음 사성위 순으로 각각 술잔을 올리고 소정의 위치로 돌아감.
8) 분헌례(分獻禮) :종헌관이 행례를 위해 장차 전에 오르려고 하면 찬인이 동종향 분헌관과 서종향 분헌관을 인도하여 관세위에 나아가 세수하고 동종향 분헌관은 동종향 십칠위(十七位)에 분향하고 술잔을 올리고 서종향분헌관은 서종향 십칠위(十七位)에 분향하고 술잔을 올리고 소정의 위치로 돌아감.
9) 음복례(飮福禮) :알자가 초헌관을 인도하여 음복하는 곳에 나아가 석전에 드린 술과 포(脯)를 받아 음복함. 헌관이 사배함. 대축이 철상(撤床)함. 당상악을 하다가 그치고 다시 시작함. 헌관과 참례자 일동이 사배함.
10) 망예례(望瘗禮) :알자가 초헌관을 인도하여 분축(焚祝)하는 곳에 나아감. 악을 그침. 대축이 분축함. 알자가 초헌관에게 예필(禮畢)을 고함. 알자와 찬인이 헌관을 인도하여 퇴출함.

헌관 및 집사의 명칭과 임무

초헌관(初獻官)  5성위에 향을 사르고 첫 잔을 올리는 제관으로 제사의 주인이다
아헌관(亞獻官)  5성위에 두 번째 잔을 올리는 제관
종헌관(終獻官)  5성위에 세 번째 잔을 올리는 제관
분헌관(分獻官)  종향위(從享位)에 향을 사르고 잔을 올리는 제관
당상집례(堂上執禮)  한문 홀기를 읽어 진행을 담당하는 제관
당하집례(堂下執禮)  원래는 동서무 진행을 담당하는 집례였으나 현재는 동서무에 위패를 모시지 않아 대성전 월대밑에 서서 해설을 담당하는 제관
전사관(典祀官)  나라의 제사에 제수를 준비하고 제상을 차리는 일을 맡은 제관
대축(大祝)  축문을 읽는 제관
알자(謁者)  초헌관을 안내하는 집사
찬인(贊引)  헌관과 대축을 안내하는 집사
봉향(奉香)  향(香)을 받드는 집사
봉로(奉爐)  향로를 받드는 집사
봉작(奉爵)  준소(樽所:술항아리를 놓아두는 곳)에서 사준이 따른 술잔을 받아 헌관에게 건네주는 집사
전작(奠爵)  헌관에게서 술잔을 받아 신위 앞에 올리는 집사
사준(司樽)  준소에서 술을 잔에 따르는 집사